예전에는 공부가 지겨웠다.
변화하는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더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.
이미 알고 있는 것만으로 살아가고 싶어, 결국 직업까지 바꾸었다.
그때는 매일매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.
하지만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.
겨우 기대어 살아가기라도 하려면, 매일 다시 배우고 노력해야 했다.
그리고 이상하게도, 이제는 그게 예전처럼 싫지만은 않다.
마음을 조금 바꿔서 그런가 보다.
돌이켜보면, 내 삶은 한때 속도였다.
더 빨리, 더 많이, 더 앞서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달려왔다.
하지만 지금은 다르다.
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.
내가 가고 싶은 삶의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, 그걸 확인하는 게 더 본질적이다.
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고 복잡하다.
무엇이 가능한지, 위험은 얼마나 되는지 늘 따져본다.
상처받고 싶지 않으면서도, 용기를 내고 싶은 모순된 마음 속에서 Isabella가 태어났다.
Isabella는 적당한 거리를 둔 또 하나의 나다.
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, 실험할 수 있는 안전한 자리.
부캐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, 내게는 단순한 가면이 아니라 시도와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다.
Isabella가 생겨서 내가 실험을 시작한 건지,
실험하고 싶은 마음이 Isabella를 만든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.
중요한 건 지금, 나는 이 이름으로 만들고, 조합하고, 공개하고,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.
이것이 Isabella의 시작이고, 동시에 나의 또 다른 시작이다.